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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회 총회(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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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23 15:43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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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전도협회(대표 이유빈)에 대해 본 총회 산하 교회는 관계하지 못한다.

1) 개요
이유빈 장로의 가르침이 주어지는 집회에서는 죄를 회개하게 하는 일을 중심적으로 행하는 바, 죄 고백의 방법이 회중 앞에서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이유빈, 고난주간 전도전략, 예수전도협회, p. 19). 이러한 행위가 모여든 회중들에게 어떤 고백으로든 은혜를 끼치기도 하지만, 어떤 죄의 고백은 개인적으로 뿐 아니라 가족적으로나 교회적으로도 오히려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고도 한다. 이러한 그의 죄 고백에 대한 이해와 그가 제시하는 죄고백의 방법에는 쉽게 수용할 수 없는 문제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 문제점

(1) 자범죄에 대한 고백의 필요성을 강조함에 있어서
이유빈은 그의 문서「전도는 쉽다」라는 책, 제12장 ‘부흥의 실제’ 라는 주제 하에서 진정한 부흥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먼저 “개인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는 원칙은 우리 속에 있는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데에 있다”(p. 246)는 점을 전제한다.
무거운 것을 벗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죄를 짓게 되는 자범죄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죄를 벗어 버려야 만이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그것이 부흥(復興)이라고 설명한다(p. 272).
그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 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되 기쁨으로 믿지 못하는 이유가 해결되지 않은 바로 이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p. 272). 그는 “물론 십자가에서 모든 죄가 다 해결되었으나, 우리가 어떤 특정한 죄를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죄의 짐과 중압감을 그대로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신학적으로는 인간의 원죄가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해결되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자범죄’에 대하여 진정한 회개를 해야만이 복된 신앙생활이 회복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것을 그는 부흥이라고 말한다.
이유빈은 에스겔 36장 21절의 본문의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자범죄의 고백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연결 지어 해석한다. 그는 역시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시 에스겔 36장 26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백성들을 교회를 통하여 거룩하게 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다. “교회의 거룩함은 죄를 감추거나 꾸며짐으로부터 오는 거룩함이 아니고 죄를 내놓고 자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거룩함”이라고 설명한다(p. 276).
이러한 그의 해석과 증거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고백되어야 하며, 그것은 교회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빈의 자범죄에 대한 이해에 죄 고백에 대한 강조는 먼저 성경 해석적으로 문제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인용하고 있는 에스겔 36장21절 이하의 본문들은 에스겔의 성경본문 전체의 맥락에서 특별히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지 않다. 그 본문에 나타나는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이 땅 가운데서 욕되게 한 범죄와 타락한 자리에서 다시 물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되돌림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회복되는 언약의 새롭게 함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새 언약의 은혜). 그리고 이 본문은 에스겔의 입을 통하여 열국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를 섬기게 될 때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날 신약시대의 새 언약에 의한 복음전도 운동을 예언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세계만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게 될 기독교 기독교의 복음전도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이유빈이 설명하고 있는 에스라 시대의 죄 고백과 부흥, 미스바의 부흥, 히스기야 시대의 부흥 등은 개인적인 윤리적인 죄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적으로 하나님 섬기기를 잃어버림과 예루살렘과 성전의 붕괴 등에 대한 공동적 책임에 대한 죄 고백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유빈은 이 점을 간과하고 일방적으로 개인의 윤리적인 죄가 주된 것으로 일일이 공중 앞에서 고백되어진 것처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빈은 그의 글에서 계속하여 개인적인 죄를 공중 앞에서 회개하는 일이 한국교회적으로는 1907년에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운동도 많은 성도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 감추어져 있던 죄들을 울면서 고백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한다(p. 280). 그는 또한 간음죄의 고백과 도적질한 죄 등의 개인적인 죄를 교회 앞에서 고백함으로 교회의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을 주장한다(p. 281).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 당시 정황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만을 자신의 가르침의 설명의 정당화를 위하여 인용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당시 집회에 참여된 자들의 입에서 개인적인 죄들이 고백된 것은 분명하지만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공식적인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의 은혜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청중들이 그 은혜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하나님 앞에 자기의 지은 죄들을 고백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이유빈의 죄 고백의 방법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되어야 할 점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의 죄를 공중 앞에 고백했을 때 얻게 될 유익점이 무엇인가를 구별할 필요에 대한 것이다. 즉 그것이 과연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공중과 개인의 더 큰 시험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죄 고백이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오지 못하고,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은 죄는 숨김없이 다 하나님 앞에 고백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은혜인 죄 용서함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속죄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죄 고백의 방법은 반드시 교회의 공중 앞에서 모든 죄가 고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죄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당사자들과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음을 성경은 더 많이 교훈을 주고 있음을 본다(마 5:23-24; 마 6:12). 특별히 역사적으로 칼빈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해성사를 반대하면서(신부의 사적인 행위로), 오히려 죄 고백은 공적인 행사로서 예배에서 공동의 고백문으로 죄책에 대한 고백이 시행되기를 희망하였고, 직접 제네바 교회의 예배모범에 죄고백의 순서를 만들어 죄책에 대한 고백문으로 공중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하는 모범을 제시하기도 하였다(개혁교회예배의 전통). 따라서 칼빈은 죄 고백은 하나님께만 하고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고 강력히 말하였다(강요 III.4.9).

3) 결론
이유빈의 주장에서 죄 고백의 방법이 지나치게 공중의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그리고 그가 행하는 집회의 분위기가 참여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일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면 그 집회는 문제를 가진 것으로 지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혜는 결코 강요나 억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쁘신 뜻대로 개인의 스스로의 판단과 자유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고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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