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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는 장막성전 이단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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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23 15:18 조회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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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성전의 후예들
원조 유재열은 사업가로 변신, 자칭 후신들은 살아서 성업 중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무료성경신학과 관련하여 이만희 씨에 대한 이단성을 밝혀달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본지에 쇄도하고 있다. 이만희 씨의 경우, 그 뿌리를 장막성전에 두고 있어 그의 이단 사상을 들춰내기 위해서는 장막성전의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본지의 판단이다. 아직까지 이씨의 이단성 여부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회의 실정에서, 본 기사는 나름대로 결정적인 자료가 되리라 생각한다. 증거를 제시하는 등 2회에 걸쳐 연속 보도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이만희 씨에 대한 접근은 아무래도 유재열 쪽에서부터 시작해야 보다 선명해 질 것 같다. 그런데 자칭 보혜사 성령, 어린양이라 불리워졌던 전 장막성전 교주 유재열 씨가 사업가로 변신,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66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장막성전이란 단체를 세워 교주로 등극하면서 60~70년대에 걸쳐 장안의 화제인물이었던 그가 30여 년이 지난 오늘, 볼링용 스포츠 제품 회사에 관여하면서 철강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 유씨의 요즘 모습이다.

유씨는 75년 9월, 한 사기 사건과 관련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듯 81년에 오평호 목사에게 장막성전을 인계하고 잠적했었다 당시 그의 잠적은 숱한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항간에서는 그가 미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갔다는 말도 있었다.

유씨의 잠적과 오평호 목사의 등장으로 장막성전은 붕괴됐다. 오목사가 장막성전의 기성교회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교회 이름도 이삭교회로 바꿔버렸다. 이로 인해 일부 핵심 추종 신도들은 반발하고 나섰고 급기야 삼삼오오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각기 또 다른 집단을 형성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유씨의 뒤를 이은 장막성전이라고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이만희(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홍종표(증거장막성전), 심재권(무지개증거장막), 정창래(성남장막성전) 등으로 서울과 근교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중 정창래는 과거 장막성전에서 7천사 중 한사람으로 사무엘이라는 영명(靈名)도 가지고 있었다.

유재열 씨 퇴장, 오평호 목사 등장

장막성전의 역사는 교주 유재열 씨의 퇴진과 함께 오평호 목사의 개혁이 정점이다. 유재열 씨가 이끈 장막성전은 한때 과천 지부에만 신도가 약 2천명에 이를 정도로 교세가 번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재열 씨가 한 사기 사건에 관계되면서 장막성전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교주 유씨가 신도들을 상대로 한 사기 등 공갈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75년 9월 6일자)는 "서울지검 영등포 지청 김성남 검사는 6일 대한 기독교장막성전(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2리)이라는 종교 단체를 만들어 신도들의 재산을 사취하고 폭행, 공갈 등을 해 온 교주 유재열(26), 부교주 김창도(41), 집사 임종대(46), 비서 박용만(26) 씨 등 4명을 사기 공갈 무고폭력행위 등 처벌에 과한 법률 위반 등 협의로 구속했다"고 보도하였다.

계속해서 동아일보는 "교주 유씨는 지난 67년 3월 14일 대한기독교 장막성전이라는 종교단체를 만들어 2천여 명의 신도들을 모아 과천면 막계2리로 집단 이주시킨 뒤 장막성전교회 건물과 자신의 주택(시가 2천만원)을 신도들의 헌금과 노역으로 신축했다"며 유씨의 구속 경위를 설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신도들은 속속 장막 성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기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람들 중 자신의 비닐공장을 장막성전의 핵심 신도들에 의해 강제로 갈취 당했다는 홍종효(당시 46세) 씨도 이 사건 직후 수명의 신도들과 함께 장막 성전을 이탈했다. 결국 교주 유재열은 5년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장막성전을 예전처럼 회복시킬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너져 가는 장막성전을 유씨는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이때 유씨의 뇌리에 오평호 목사가 떠오르게 된다. 기성교단의 신학을 수학했다는 점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오평호 목사는 유씨에게 있어서 유일한 대안이자 상속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오평호 목사의 등장은 장막 성전의 대수술을 예고 한 것이었다. 오목사는 유씨로부터 공식적으로 장막성전을 인수받은 직후 장막성전의 붕괴를 선언했다. 그때가 1980년, 유씨에게도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오 목사는 장막성전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기성교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씨는 오 목사에게 장막성전을 인계한 후 말없이 잠적했다. 이후 유씨의 행적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미국에 갔다'는 풍문만이 그의 행적을 대변해 줄뿐이었다. 회개를 위함인지 장막성전의 재건을 위함인지 떠난 사람의 속 깊은 사정을 아는 이는 측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교주 유재열의 대한 기독교장로회 이삭중앙교회로 개명했다. 장막성전을 기성교회화하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인 것이다. 전 지부를 13개 노회, 60여개 교회로 정리했다. 교단명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본부로 정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장막성전 지부의 장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한때 모 교단과 통합을 시도한 적도 있었으나 내부 신도들의 반발과 통합과정에서의 마찰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독자 노선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유씨가 사라진 장막성전에서, 끝까지 유씨를 따르려는 자는 더 이상 남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오 목사의 개혁 방침이었다. 이러한 오 목사의 개혁 작업은 적지 않은 불협 화음을 내기도 했다. 긁어 부스럼을 낸 격이라는 말도 나왔다. 유씨를 보혜사로 철썩같이 믿고 따르던 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자칭 장막성전의 후신(後身)이라고 하는 이단 교주들이 대거 파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오 목사를 거룩한 성전에 들어온 사단 또는 마귀라고 몰아 세우기까지 했다. 새로 시작된 조직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오 목사를 자신들의 땅에 들어온 마귀로 삼은 것이다.

오 목사의 개혁 작업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81년 9월 20일에는 17명의 목사를 교단 자체적으로 배출하는 등 안정된 행보를 보였다. 이렇듯 오 목사의 등장은 성공적으로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 성공은 유씨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장막성전을 온전히 기성교회화 했을 때에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과연 유재열 씨와 이삭중앙교회(전 장막교회)는 완전히 결별한 상태인가? 아니면 유재열 씨의 지시 하에 아직도 과거 장막성전이 이삭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오 목사는 현재 유재열 씨와의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오 목사는 "유재열 씨의 가장 잘못된 교리는 7천사 개념이라고 본다. 7천사를 단체 내에 두어 그들을 신격화했던 것"이라고 유씨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가지 의문점은 남는다. 먼저 81년 9월 목사 임직예배 때 설교를 유재열 씨가 맡았다는 점이다. 유씨는 선교사라는 직함을 사용했다. 오 목사의 개혁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그때에 유씨가 공식행사에 나타났다는 것은 오목사의 개혁작업이 처음부터 유씨와의 교감 속에서 나온 작품일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결국 이삭중앙교회는 장막성전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또한, 이삭중앙교회 신도 중 일부의 증언이 오목사와 유씨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현재 이삭중앙교회 신도이며 장막성전 초창기 때부터 다녔다는 문원근(80) 씨는 유재열 씨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어린양"이라고 주장하며 유씨가 교회 창립기념일(3월14일), 신학교 졸업식 등 교회에 큰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방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오평호 목사는 "본인을 유재열 씨와 혼동한 것 같다"며 유씨와의 유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 유재열 씨는 모 교단의 극동아시아 선교 책임자로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으로 전공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회사경영을 비롯해서 국제 무역업에도 상당한 수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자는 유씨와의 인터뷰를 위해서 수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씨는 비서진을 통해서 인터뷰를 거부해 버렸다.

'장막성전' 신드롬

1966년 유재열 씨에 의해 시작됐던 장막성전은 과연 사라진 것인가? 장막성전에서 이탈한 일부 신도들은 저마다 유사 단체를 하나씩 세웠다. 유재열 씨의 장막성전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자신들에 의해서 장막성전의 '그후'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단체명에 '장막성전'이란 용어를 반드시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만희), 증거장막성전(홍종효), 무지개증거장막(심재권), 성남장막성전(정창례) 등으로 대부분 서울 근교를 활동 무대로 삼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내부 조직이 1인 교주 체제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과, 그 교주만이 성경의 요한계시록 등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언서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그들은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샘이다.

이중 대표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곳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다.1980년 3월, 이만희에 의해서 세워진 신천지는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이다. 요즘 들어 본지에는 '무료성경신학'과 기독신학원, 전국원로장로협의회라는 움직임과 함께 시선을 받고 있는 이씨에 대한상담이 부쩍 늘고 있다. 이들의 이단성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교회에는 이에 대한 이단성 여부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 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한마디로 이씨의 이단성에 대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상황이다.

이씨는 그간 교리서적으로 몇 권의 책을 발간했다. 계시록의 진상, 계시록의 완전해설, 계시록의 진상2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이들 책을 통해서 이씨의 이단성을 찾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교묘한 방법으로 모두피해갔기 때문이다. 단, 신탄(神誕)이라는 책에 '7년대환란'과 관련하여 그날이 1980년에 시작된다고 기록된 부분이 있어 주목된다(자료 1참조) 장막성전의 개혁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그룹에서 이씨가 제외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들의 홍보용 책 속에 '도서출판 신천지, 저자 이만희'라는 제목 하에 4권의 책 모두가 이씨의 저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이 '신탄'을 이씨의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이씨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엘리야, 두 증인 중 1인, 두 감람나무 중 1인, 또는 사도 요한 등으로 불리워지는 것으로 아려져 있다. 기자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이해 인덕원에 위치한 그들 단체인 신천지를 찾았다. 이씨는 건장한 남자신도 3명을 동반한 가운데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자신을 지칭한 엘리야 등의 표현에 대해 "말하기 싫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반면 이씨는 "우리의 주장하는 바는 일반교회와 다를 바 없다"고 정통성을 주장하는 한편 오히려 자신들이 기성교회에서 알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천지의 내부 공개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이씨의 이단성 여부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목소리를 낸 곳은 아직 한국교회 내에 없다. 일부 신문과 잡지에서 이씨의 이단성을 밝히기 위해 교리 분석을 시도한 적은 있으나 무료성경신학원의 교재를 분석하는 선에서 그치는 정도이다.

본지는 이씨의 이단성을 밝히기 위한 관련 자료를 추적하던 중 최근 주요 증거물을 입수하게 됐다. 신천지의 이름으로 이씨가 활동했던 초기에 그는 '새하늘 새땅'이라는 홍보물(발행인 이만희)을 곳곳에 뿌린 적이 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이 홍보물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신천지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자료 2참조).

또한 이 홍보물은 "신천지에 오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남발했다(자료 3 참조).
더욱이 동 홍보물은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들면서 신천지만이 알곡이라며 스스로 자신들이 기성교회와 다름을 밝혀 버렸다.(자료 4 참조)
이러한 이씨의 비성경적인 부분은 어렵게 입수한 그의 설교테이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이와 관련하여 다음 호에 이씨의 최근 설교 내용을 생생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재림예수로 둔갑한 교주들

유재열 씨의 사기사건을 계기로 장막성전을 이탈한 홍조효 씨는 자하문 네거리(홍지동)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단체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재림예수로 등극했다. "내가 진짜 예수다. 성경 속에 예수는 실물이 아니다. 그 예수가 실물이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육체로 오신 예수를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오리라 한 예수가 벌써 이 세상에 계신다고 했지 않는가?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날 나를 위한 가상인 것이다."
자신들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 구원의 중보자인 예수가 자신들의 단체에 이미 육체로 와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씨는 지난 80년 장막성전을 이탈한 후 7년간 이만희 씨와 같이 있었다고 한다. 이씨의 신천지에서 초창기 활동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홍씨는 이씨가 자신을 보혜사라고 하는 것에 반발을 일으켜 다시 분가해 나왔다는 것이다. "이만희 씨는 자신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틀렸다고 했지요, 그리고 내가 다시 예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내 말을 그가 듣지 않았지요."

홍씨는 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씨 자신이 보혜사라고 하는 바람에 결별했다는 설명이다.

이 집단의 신도 수는 약 50명. 주일을 비롯해서 매일 성경공부가 단체 내에서 이루어진다. 성경공부는 유재열 씨와 이만희 씨를 비판하면서 홍씨가 예수됨을 되새김질하는 내용으로 일관된다.

심재권을 중심으로 한 장막성전 이탈자들도 재림예수 잔치에 가세하고 있다. '무지개증거장막'을 이끌고 있는 심씨는 이영길, 김병희 등과 함께 안양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기자는 이 단체의 행정 책임자격인 김병희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와의 일문일답을 들어보면 이렇다.

-'무지개'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두 가지 뜻이 있다. 먼저 예수님이 다시오신다는 것과 이 땅에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89년 11월에 시작됐다/"
-단체의 설립동기는?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계시는 수 십년 전부터 내려왔었다"
-가장 중요한 계시를 받은 때는 언제이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85년에 이곳의 소문을 들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다른 단체에 있었다."
-현재 신도 수는?
"약 50명이다/"

-심재권 씨가 재림예수인가?
"그분에 대해서는 거론을 안 하는 게 좋다. 그분의 함자를 함부로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로 부딪히는 일이 된다."
-두 증인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을 증거하는가?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나타난 증거는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많이 있다. 7인, 7나팔, 7대접 등 모든 예언이 현실로 다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루어진다는 것이 구원을 의미하는가?
"집단 안에 들어와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수준 이하이다. 무지개를 통해서 14만 4천 명이 차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뒤 세상은 달라진다. 신앙의 차원이 아닌 정치, 경제,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이루어 가는 것이다."
- 이루어진다는 것이 지금은 어느 정도 되었는가?
"2/3는 지나갔다."

장막성전의 분파는 이상의 단체들 외에도 몇 곳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7천사라는 그룹에 속했던 사람들 중 신광일, 정창래, 백만봉, 김창도 등도 은밀한 가운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이쪽에서의 풍문이다.

30년 전, 장막성전의 교주 유재열 씨는 오늘날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그의 사상과 교리는 10여 개의 곁가지까지 내면서 잔존해 있다. 곁가지는 그 생김새와 성질을 전적으로 본 줄기, 그리고 뿌리에서 공급받음을 볼 때, 유재열 씨에 의해 시작된 장막성전이 앞으로 어떻게 더 번지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 도표 자료> 장막성전 계보도

유재열-대한기독교장막성전(66년 창립, 경기도 과천면 막계 2리)
┃ ┃
┃ ┃--이만희-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 ┃ (80년 창립,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
┃ ┃--홍종효-증거장막성전
┃ ┃ (88년 창립, 서울 종로구 홍지동)
┃ ┃--심재권-무지개증거장막
┃ ┃ (89년 창립, 경기도 안양시 비산1동)
┃ ┃--정창례-성남장막성전
┃ ┃--기타


오평호-이삭중앙교회
(80년창립,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 자료1>
1980년 9월14일, 이날은 근래에 일어난 새 신 일곱 머리의 조직이 장막성전에 들어와 교권(지팡이, 끈, 도장)을 몰수한 날이다. 이 날이 멸망의 가증한 자 일곱 머리가 거룩한 곳에 서서 자기 법을 선포한 날이다. 이날부터 시한을 계수하여 3년 6개월이 지나야 하며 그날은 1984년 3월14일이다. 따라서 멸망자에게 사로 잡혀 짓밟히는 기간이 끝나는 날이다. 이것으로 전 3년 반의 역사는 지나가고 회복의 역사 곧 후 3년 반이 시작한다. 회복의 역사가 끝이나는 눈부시도록 찬란한 그날 , 약속의 그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장막에 함께 계셔서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는 대명 천지의 신기원이 열리는 날이다(신탄 PP.279~280).

< 자료2>
본인은 증거하노니 말세에 약속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은 진리의 성읍이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전이므로 만방은 이곳으로 와야만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약속이다(새하늘 새땅, 1991년 1월).

< 자료3>
성경에 약속하신 구원처-구약의 예언이 응한 예수님 때에는 예수님의 신교가 아닌 교단들이 이단이 되었고, 신약의 예언이 응한 그의 나라 신천지증거장막성전 계시록 때에는 그의 신천지 신교가 아닌 교단들이 못 믿으면 또 이단이 된다. 주께서 성경에 약속하신 말세에 구원받을 이름 은 그의 나라 곧 신천지증거장막성전뿐이다. 이외 천하 그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준 일이 없다. 성경 안과병원은 천국길 안내소 신천지에 있다(새하늘 새땅, 1990년 11월).

< 자료4>
또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 일반 기성교회와 다른 점은 마태복음 13장 예수님의 말씀에 세상 밭에 두 가지의 씨가 뿌려졌으니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의 씨요, 하나는 마귀의 말의 씨라고 설명하시고 이 두 씨 중 알곡은 주 재림 때 신천지로 추수해 온다 하였으니 남아 있는 것은 가라지(마귀의 씨)와 쭉정이(말씀 없는 겨)가 남아 있게 된다. 이것이 종교 종말에 있는 신천지와 기성교회와의 다른 점이다(새하늘 새땅, 90년 10월 특집호).
(월간 <교회와신앙> 1995년 4월호)
이 글은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이 제공한 기사입니다. Copyrightⓒ<교회와신앙>



입력 : 1995년 04월 01일 00:00:00 / 조회수 : 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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